마태복음 9장

Matthew Chapter 9
본문의 단락을 나누고 각 단락의 핵심을 정리해 보세요
연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적어 보세요
1.
2.
3.
4.
연구하며 생긴 의문점을 적어 보세요
설교 제목
9:1-8 — 죄 사함의 근원적 치유 권세와 중풍병자의 회복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 본 동네인 가버나움에 이르시자,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아옵니다. 주님은 병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를 돕기 위해 침상을 지고 온 사람들의 이웃을 향한 연대적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병자의 마비된 육신을 고치기 전에 먼저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고 선포하십니다. 이는 신체적 질병의 외적인 치유에 앞서, 인간의 모든 근원적 고통의 부패인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끊어진 사귐을 회복하는 것이 전인격적 치유의 본질임을 일깨웁니다.
이에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지신 사죄의 주권을 예수가 참람하게 침해했다고 여겨 속으로 신성모독이라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에 숨은 악한 생각을 아시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선언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치유 명령 중 어느 쪽이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쉬운지 반문하십니다. 주님은 인자가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전적인 신적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세상에 분명히 알리기 위해, 환자에게 즉각적으로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권세에 힘입어 중풍병자가 즉시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메고 삶의 터전인 집으로 돌아갑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치유의 실재성을 통해 주님의 보이지 않는 사죄 권능이 완전히 증명된 것입니다. 무리들은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죄를 사하는 이 엄위한 권세를 예수와 그분이 세우신 지상의 제자 공동체인 사람들에게 위임해 주신 하나님께 뜨겁게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은 신체 마비의 근원인 죄를 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시키시며, 일어나 집으로 가라는 말씀의 실재성을 통해 인자의 사죄 권세를 엄숙히 입증하십니다.
9:9-17 — 소외된 자들을 부르신 긍휼의 식탁과 새 부대의 복음
가버나움 세관을 지나가시던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향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지배 아래 동족의 돈을 갈취하던 죄인의 대명사였으나, 마태는 모든 생업을 즉시 버리고 일어나 주님을 쫓아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누워 친밀한 식탁의 교제를 나누십니다. 율법적으로 부정한 자들과 음식을 나누는 이 식탁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가 종교적 장벽을 허물고 소외된 자들을 용서로 용납하는 은혜의 잔치임을 상징합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느냐고 분노와 비난을 퍼붓습니다.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오직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다고 단언하십니다. 그리고 호세아서를 인용해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의 참뜻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이는 외식적인 성전의 의식(제사)보다 상처받고 소외된 자를 품어 살려내는 사랑의 긍휼이 율법의 근본정신이자 참된 예배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또한 금식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 신랑 되신 예수와 함께 천국 잔치를 누리는 동안에는 제자들이 슬퍼하며 금식할 수 없다고 답하십니다. 주님은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부대가 찢어져 모두 버리게 되므로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형식주의적인 율법의 낡은 제도(금식의 의무)로는 예수와 함께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이고 새로운 생명의 복음(새 포도주)을 결코 담아낼 수 없음을 명시한 것입니다.
⚠️천국 복음은 제사 의식보다 세리와 죄인을 살려내는 긍휼의 식탁이며, 낡은 가죽 부대 같은 형식주의적 율법을 기각하고 새 부대와 같은 복음적 기쁨을 누리는 새 시대의 질서입니다.
9:18-38 — 절망을 이기는 생명의 접촉과 목자 없는 양들을 향한 긍휼
한 관리의 간절한 청을 받아 죽은 딸을 살리러 가시던 도중,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뒤로 다가와 그분의 겉옷 가장자리의 옷술을 만집니다. 혈루증은 율법상 부정한 질병으로 공동체로부터 격리되는 사형 선고와 같았으나, 여인은 그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얻으리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이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의 접촉은 율법적 부정을 예수의 거룩한 치유의 생명력으로 정화하여 그녀를 전인적으로 회복시킵니다.
관리의 집에 도착하시자 죽음의 절망 속에서 피리 불며 통곡하는 무리가 가득합니다. 주님은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며 비웃는 무리를 내보내신 후, 방에 들어가 소녀의 손을 잡으십니다. 그러자 소녀가 즉시 일어납니다. 죽음조차 아들의 권세 앞에서는 일시적인 잠에 불과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어 눈먼 두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구하며 고백한 믿음대로 눈을 밝히시고,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자의 혀를 풀어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고치시는 삼대 사역을 완수하십니다. 주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흩어진 무리를 바라보시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깊은 긍휼을 느끼십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 추수할 진정한 일꾼들을 세상에 보내어 주시기를 수확의 주인이신 성부께 간구하라고 하십니다.
💡부정한 혈루증 여인과 죽은 소녀에게 닿은 생명의 접촉은 영원한 구원을 주며, 방황하는 백성들을 창자가 끊어지듯 아파하시는 주님의 긍휼은 추수할 일꾼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촉구합니다.
1.
ἀφίενται αἱ ἁμαρτίαι
죄들의 용서, 사죄 (ἄφεσις ἁμαρτιῶν - 아페시스 하마르티온)
단순한 신체 마비의 고침을 넘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실존적 죄를
용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천국 사역의 목적입니다.
마태복음 9:2
2.
βλασφημεῖ
신성모독, 참람함 (βλασφημία - 블라스페미아)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사죄의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보고,
그분의 아들 됨을 알아보지 못한 채 종교 기득권자들이 내뱉은 불신앙의 정죄입니다.
마태복음 9:3
3.
ἔλεος
긍휼, 자비 (ἔλεος - 엘레오스)
호세아 6:6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밝히신 율법의 정신이며, 외식적인 제사 의식보다
이웃의 상처와 소외를 품고 치료하여 살려내는 신앙의 본질적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9:13
4.
κράσπεδον
옷술 (κράσπεδον - 크라스페돈)
겉옷 가장자리에 다는 율법적 의식 장식이며, 부정한 혈루증 여인이 예수의 거룩한
생명력에 접촉하여 전인격적인 치유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만진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9:20
5.
σῴζω
구원하다, 치유하다 (σῴζω - 소조)
단순한 병세 완화를 넘어, 율법적 격리와 영적 단절로부터 온전하게 벗어나
생명의 충만함을 획득하고 사회적 관계를 전인적으로 회복하는 사건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9:21
6.
σπλαγχνίζομαι
불쌍히 여기다, 민망히 여기다 (σπλαγχνίζομαι - 스플라그니조마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쓰러져 가는 백성들을 보시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깊은 아픔과 애통함을 느끼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긍휼과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9:36
마태복음 9장은 마비와 소외, 그리고 죽음의 질서를 해체하고 하늘의 생명을 주입하시는 그리스도의 긍휼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적 성격을 규명한다. 중풍병자에게 신체적 쾌유에 앞서 죄들의 용서(ἄφεσις ἁμαρτιῶν)를 선포하신 예수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단절시키는 영적 불행을 해결하는 것이 참된 치유임을 입증한다. 사죄를 선언하신 아들의 권세를 보지 못하고 신성모독(βλασφημία)이라 여긴 서기관들의 악한 불신앙은 일어나 걸어가라는 즉각적인 기적 앞에서 여지없이 깨어진다. 세관의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신 사건은, 의식적인 제사 행위보다 소외된 죄인을 불쌍히 여겨 살려내는 긍휼(ἔλεος)이 율법의 참정신이자 예배의 본질임을 웅변한다. 열두 해 동안 율법적 부정의 굴레에 묶여 사회와 성전에서 격리되었던 혈루증 여인은 예수의 옷술(κράσπεδον)을 만지는 필사적인 믿음을 통해 전인적인 구원(σῴζω)과 영적 회복을 획득한다. 절망의 피리를 불며 통곡하는 세상 속에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깨우시며 죽음을 잠으로 선언하신 아들의 생명 권세는, 눈먼 자와 말 못하는 자를 말씀으로 해방하시는 메시아의 통치로 나아간다.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백성들을 창자가 끊어지듯 아파하며 불쌍히 여기신(σπλαγχνίζομαι) 주님의 긍휼은, 오늘날 복음의 추수 밭에 나가 사랑과 자비를 헌신적으로 실천할 제자들의 실질적인 순종을 절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