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Matthew Chapter 23
본문의 단락을 나누고 각 단락의 핵심을 정리해 보세요
연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적어 보세요
1.
2.
3.
4.
연구하며 생긴 의문점을 적어 보세요
설교 제목
23:1-12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 고발과 형제 공동체의 원리
예수께서는 무리와 제자들을 향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권위 있게 가르치는 정당성은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결코 본받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며, 백성들의 어깨에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워놓고도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여 도와주려 하지 않는 가혹한 종교적 태도를 취합니다.
이 종교 기득권자들의 모든 행위는 오직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 과시욕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성구를 넣은 가죽 경문을 넓히고 겉옷의 옷술을 길게 늘어뜨리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아 대접받는 것과 시장에서 존경이 섞인 랍비라는 칭호를 듣기를 열렬히 좋아합니다. 주님은 이들의 외식을 폭로하심으로써 신앙의 본질이 내면의 정직함에 있음을 환기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랍비나 지도자라 불리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교회의 참된 선생이자 인도자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시며, 모든 신자는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동등한 형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역설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만이 천국에서 진정으로 높아진다는 복음적 공동체 윤리를 천명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군림과 대접을 탐하는 기득권적 위선을 깨부수고, 유일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낮추며 겸손히 섬기는 형제적 평등을 실현해야 합니다.
23:13-33 — 영적 눈먼 인도자들을 향한 일곱 대강령의 탄식
예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완전수인 일곱 번의 준엄한 화(비극적 탄식)를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천국 문을 가로막아 자신도 안 들어가고 타인도 못 들게 하며, 열성적으로 개종자를 포섭하나 결국 자신들보다 배나 더한 지옥 자식으로 타락시킵니다. 또한 성전보다 제단의 금과 예물에 한 맹세만을 중시하는 눈먼 인도자의 편법과 물질주의적 기만을 일삼습니다.
이들은 채소의 미세한 십일조는 결벽증적으로 철저히 구별하여 바치면서도, 율법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인 정의(의), 자비(인), 신실함(신)은 통째로 유기합니다. 주님은 이를 가리켜 물속의 아주 작은 곤충인 하루살이는 율법적 부정함 때문에 꼼꼼히 걸러내면서도 정작 가장 큰 부정한 짐승인 약대는 통째로 삼켜버리는 자기모순적 맹목이라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겉은 하얗게 칠하여 외관을 하얗고 정결하게 포장했으나 속은 부정하고 썩은 뼈가 가득 찬 회칠한 무덤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들은 과거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과오를 비판하며 비석을 꾸미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조상들의 죄의 분량을 마저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자 마지막 상속자인 예수를 사살할 음모를 꾸미는 뱀의 후예들입니다.
⚠️외식과 편법적 형식에만 매달려 공의와 자비의 본질을 상실한 위선은, 겉은 화려하나 안은 송장의 뼈로 채워진 무덤처럼 비참한 심판을 초래합니다.
23:34-39 — 박해의 상속과 예루살렘 도성을 향한 심판의 애가
주님은 장차 제자들과 복음 전도자들을 파송하실 것이나, 완악해진 종교 권력자들은 그들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핍박할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 최초의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살해당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역대 흘려진 모든 의로운 피의 신적 대가가 고스란히 이 완악한 세대와 예루살렘의 머리 위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입니다.
주님은 멸망을 앞둔 도성을 바라보시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목놓아 메시아적 비통함을 터뜨리십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주님은 유대 자녀들을 수차례 돌이켜 안으려 하셨으나, 그들은 기득권의 자만에 눈이 멀어 끝내 거부했습니다. 이 비극적 거역의 결과로 평화의 성읍이자 성전이 있는 그들의 집은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될 것입니다.
성전 건물은 마침내 로마 군대의 불길 속에 파괴될 것이며, 주님의 임재는 그들에게서 철수됩니다. 그들은 장차 종말론적 심판의 자리나 재림의 영광 속에서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메시아를 뒤늦게 고백하고 굴복하기 전까지는, 다시는 구원의 주님을 마주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 어린 품으심을 끝내 거부하고 의인들의 피를 흘린 예루살렘은 황폐케 될 것이며, 회개 없이는 생명의 주님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1.
γραμματεύς
서기관, 율법학자 (γραμματεύς - 그람마테우스)
모세의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가르침의 권위자들을 뜻하며
정작 율법의 참 정신은 버린 채 기득권을 지키려는 외식의 표상으로 쓰입니다.
마태복음 23:2
2.
οὐαί
화 있을진저 (οὐαί - 우아이)
단순한 정죄의 저주가 아닌, 다가올 비극적 심판과 파멸의 비참한 운명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시는 메시아의 예언자적 탄식이자 공포입니다.
마태복음 23:13
3.
ὁδηγός
인도자, 길잡이 (ὁδηγός - 호데고스)
길 잃은 자를 목적지로 안내해야 할 역할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본질을 보지 못해
백성들을 함께 멸망의 구덩이로 끌고 가는 소경을 풍자하는 데 쓰였습니다.
마태복음 23:16
4.
κώνωψ
하루살이 (κώνωψ - 코놉스)
가장 미세하고 부정한 곤충 중 하나를 뜻하며, 세칙 율법에만 눈멀어 결벽을 부리고
정작 거대한 악(약대)은 아무렇지 않게 범하는 위선을 지적하는 비유적 곤충입니다.
마태복음 23:24
5.
κονιάω
회칠하다 (κονιάω - 코니아오)
부정함을 감추고 외양을 아름답고 정결하게 단장하여 백성들이 접촉을 피하게 하는
행위로, 겉만 꾸미고 속은 부패를 방치하는 바리새적 기만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
6.
τάφος
무덤 (τάφος - 타포스)
죽음의 뼈가 들어 있는 시신의 매장처로, 위선에 사로잡힌 외식적 신앙이
속은 썩은 송장처럼 영적으로 이미 완전하게 죽어 있는 처참한 상태를 고발합니다.
마태복음 23:27
마태복음 23장은 종교 기득권의 과시적 외식에 대한 메시아의 최종적 고발이자, 참된 형제 공동체의 수립을 선언하는 책망의 메시지이다. 서기관(γραμματεύς)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교훈을 입술로만 외치며 정작 자신들은 백성들의 율법 멍에를 돕지 않고 권위주의적 상석만을 탐한다. 이에 주님은 다가올 파멸을 향한 탄식(οὐαί)을 일곱 대강령으로 쏟아내시며, 성전보다 예물에 집착하는 눈먼 인도자(ὁδηγός)들의 탐욕적 기만을 징벌하신다. 십일조의 세칙은 지키면서도 정의와 자비의 대원칙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들의 위선은 하루살이(κώνωψ)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 맹목과 다를 바 없다. 겉모양을 아름다운 단장으로 위장했으나 안에는 죽은 뼈가 가득한 회칠한(κονιάω) 무덤(τάφος)과 같은 외식은, 아들을 거부함으로써 조상들의 살인적 죄의 분량을 채우는 독사의 자식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박해당할 선지자들의 피의 대가는 이 세대의 심판으로 집행될 것이며, 암탉의 날개 품으심을 끝까지 거부한 예루살렘의 성전 성읍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 황폐함에 직면한다. 결국 자기를 높이는 완악함을 버리고 스스로 낮추어 유일하신 그리스도만을 주로 모시는 겸손한 섬김의 백성만이 참된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입성할 것이다.
이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