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장

Matthew Chapter 18
본문의 단락을 나누고 각 단락의 핵심을 정리해 보세요
연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적어 보세요
1.
2.
3.
4.
연구하며 생긴 의문점을 적어 보세요
설교 제목
18:1-14 — 천국에서 큰 자와 소자를 향한 선한 목자의 심정
제자들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서열 경쟁과 지위 획득에 관한 욕망을 노출시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불러 한가운데 세우시고, 스스로 낮추어 보잘것없는 소자의 처지에 서지 않으면 결단코 구원(천국)을 얻을 수 없음을 명시하십니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사회적 권리나 독립된 지위가 없던 '아무 힘없는 존재'의 대명사였습니다. 천국에서의 참된 위대함은 세상의 잣대인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스스로 낮추어 공동체를 받드는 섬김의 겸손에 있습니다.
이어 주님은 나를 믿는 '소자'(미크로스 - 가장 작은 자) 하나라도 넘어지게 만드는 범죄의 심각성을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자는 연자맷돌(나귀가 돌리는 거대한 맷돌)을 목에 메고 깊은 바다에 던져지는 영원한 멸망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짓게 만드는 손이나 발을 과감히 찍어내고 눈을 빼어 내버리라는 파격적인 과장법 비유를 통해, 죄의 영적 근원에 대하여 타협을 불허하고 과단성 있게 결단할 것을 영적으로 촉구하십니다.
나아가 예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안전하게 위임하고, 길 잃어 방황하는 단 한 마리의 양(플라나오)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는 목자의 비유를 통하여 소자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전하십니다. 이는 대(大)를 위해 소(소)를 마땅히 포기하는 세상적인 효율성의 법칙을 완전히 부정하고, 가장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한 사람도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대하시는 하늘의 사랑을 공포한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기 쉬운 자들을 돌보고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지상의 천국인 교회 공동체는 가장 연약하고 미미한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영혼들을 귀하게 품어야 합니다.
18:15-20 — 죄 범한 형제를 향한 단계적 권고와 공동체의 임재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서 형제가 구체적인 허물이나 죄를 범했을 때 질책하고 조치해야 할 세부적인 단계를 수립해 주십니다. 첫 단계는 '너와 그 사람과만 단둘이 대면하여 잘못을 밝히는(엘랭코)' 개인적인 접근입니다. 이는 형제의 인격과 부끄러움을 배려하는 사랑의 성숙한 인내이며, 문제를 함부로 소문내어 일을 키우기 전에 조용히 그가 스스로 죄에서 돌이켜 관계를 회복하게(형제를 얻게) 하려는 배려 깊은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두세 명의 증인을 동반하여 자신의 권고가 사적인 독단이 아님을 입증하는 2단계를 밟습니다. 마지막 3단계는 공동체(교회) 전체의 권위로 공론화하여 훈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궁극적 선언마저 거절할 때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대하라'는 말씀은, 징계를 통한 배척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자비로운 설득의 수단이 끝났을 때 주어지는 교정적 격리이자 교회의 신학적 영적 권위를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교회에 땅에서 매고 푸는 권능을 약속하시며,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합심하여 모이는 그 자리에 친히 임재하시겠다고 다짐하십니다. 이 임재의 약속은 마태복음의 신학적 대주제인 '함께하시는 임마누엘(1:22, 28:20)'의 교회론적 약속입니다. 교회의 권위와 임재는 물리적인 건물의 크기나 다수의 횡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모임의 진정한 목적이 되어 합심하여 구하는 곳에 영원히 임하십니다.
⚠️교회 공동체의 권징과 권고는 상대방을 정죄하여 추방하는 칼날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그를 죄의 늪에서 구원하려는 절박한 인내의 표현입니다.
18:21-35 — 무한한 용서의 기초와 일만 달란트 탕감의 복음
베드로는 랍비들의 보편적인 한계(세 번)를 훌쩍 넘는 '일곱 번'의 넉넉한 용서를 제안하며 의기양양해하지만,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무제한으로)" 용서하라 선언하시며 그의 인간적 우월감을 꺾으십니다. 이 용서의 비밀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선명하게 설명됩니다. '일만 달란트'는 당시 상상 가능한 최대의 화폐 단위로서 평생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무한한 빚을 상징하며,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지고 있는 죄의 무게를 상징합니다.
임금은 일만 달란트의 불가능한 빚을 오직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긍휼) 하나 때문에 완전히 무상으로 탕감해 줍니다. 그러나 탕감받은 종은 문밖을 나서자마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서너 달 치 노동자 품삯에 불과한 소액)을 빚진 동료 종(쉰둘로스)의 멱살을 잡고 감옥에 가두는 혹독함을 보여줍니다. 임금은 이미 그가 청원할 때 오래 참고(마크로투메오) 용서해 주었으나, 받은 은혜를 베풀지 않는 그를 '악한 종'이라 질타하며 탕감을 취소합니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이 형제의 계속된 허물과 과오를 무제한으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자기 수양이 아닌 복음적 감격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100주년 주석이 제시하듯,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라는 불가능한 죄의 빚을 일방적으로 용서받은 특권자들입니다. 이 긍휼의 복음적 감격을 늘 간직하여 이웃에게 용서의 통로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고, 참된 하늘나라의 다스림을 삶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끝없이 용서할 수 있는 힘은 도저히 갚을 길 없던 일만 달란트의 죄를 하나님께 이미 용서받았다는 긍휼의 복음을 매일 기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1.
μικρός
소자, 가장 작은 자 (미크로스)
단순한 물리적 작음이 아니라, 사회적·영적으로 힘없고 가치 없게 대접받는
가장 미비한 한 영혼이라도 결코 경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18:6
2.
μύλος ὀνικός
연자맷돌 (뮐로스 오니코스)
나귀가 끌어 돌리던 거대하고 무거운 대형 맷돌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자를 실족케 하여 넘어지게 만드는 범죄가 지닌 파괴적 무게와 심판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18:6
3.
ἐλέγχω
죄를 밝히다, 권고하다 (엘랭코)
성급하게 소문내지 않고, 상대의 잘못과 실수를 면대하여 조용히 밝히는 조치로
형제를 진실하게 설득하여 정죄하지 않고 회복시켜 '얻고자' 함이 목적입니다.
마태복음 18:15
4.
μύριοι
일만 (뮈리오이)
고대 헬라어 수체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숫자 단위로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갚을 수 없는 무한한 죄의 깊이와 크기를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18:24
5.
σύνδουλος
동관, 동료 종 (쉰둘로스)
동일한 주인을 섬기는 동료 노예나 신하를 가리키며
하나님 아래 모든 신자는 수평적으로 동등하게 긍휼을 베풀어야 할 관계임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18:28
6.
μακροθυμέω
오래 참으시다, 참으소서 (마크로투메오)
노하기를 더디 하고 끝까지 견디는 신적 자비의 성품으로
구약에서 백성의 완악한 범죄에 끝없이 오래 참으시는 여호와의 자비를 뜻합니다.
마태복음 18:26
마태복음 18장은 하늘나라의 다스림을 투영하는 보이는 교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인 겸손과 소자를 향한 긍휼, 그리고 무한한 용서를 선언한다. 제자들의 세속적 지위 지향을 꺾으신 예수께서는 당대의 가장 무력한 소외 계층이었던 어린아이의 지위에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공동체 내의 철저한 겸손을 명령하신다. 공동체 내의 보잘것없는 소자(미크로스)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행위는 거대한 연자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는 것보다 참담한 죄이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긍휼이야말로 하늘 아버지의 참된 심정이다. 형제가 범죄하였을 때 징계하고 권고하는(엘랭코) 세 단계의 세밀한 절차는 정죄와 추방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영혼을 돌이켜 살려내려는 세심한 사랑의 배려이다.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임하시는 임재의 약속은 교회가 매고 푸는 권위를 보증하는 임마누엘의 완성을 보여준다. 일만 달란트라는 무한한 빚을 일방적 자비(마크로투메오)로 탕감받은 성도는 그 받은 긍휼의 복음적 감격을 기억함으로써, 백 데나리온에 불과한 형제의 사소한 허물을 중심으로 끝없이 용서할 의무가 있다.
이 말씀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