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은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헌장이라 불리는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입니다. 그중에서도 마태복음 6장은 산상수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5장 하반부에서는 예수님께서 6가지 반론("너희는 ~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을 통해 성도의 내면과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조명해 주셨습니다. 반면, 6장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내면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구체적인 경건 행위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6장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거룩하고 중요한 3대 경건 행위로 여겨졌던 구제(Almsgiving), 기도(Prayer), 금식(Fasting)에 대한 주님의 획기적인 선언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이 세 가지 행위를 철저히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구제·기도·금식은 비단 1세기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에게도 영성생활의 핵심을 이루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본질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 더욱 깊이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이 거룩한 행위들을 하나님과의 교제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의 종교적 만족을 채우고, 사람들에게 영광받고 인정받으며 칭찬받기 위한 무대로 악용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외식적) 행동을 향해 준엄한 경고를 보내신 것입니다.
1. 구제에 대한 가르침: 은밀함의 원칙 (1–4절)
마태복음 6장 1절과 2절은 모든 성도가 평생 가슴에 새겨야 할 경건생활의 대원칙을 선포하며 시작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1–2)
예수님께서는 당시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갈구하던 종교인들의 마음 중심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구제(Almsgiving)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대행하는 거룩한 행위임에도, 그들은 동네 어귀나 회당에서 나팔을 불며 자신들의 선행을 과시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이 엄중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먼 훗날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내가 평생 행했던 구제와 봉사, 기도와 금식의 모든 경건생활이 과연 '하나님 앞(Coram Deo)'에서 행해진 것인지, 아니면 '사람 앞'에서 연기된 것인지를 주님께서 친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다 받아버렸다면, 하늘 아버지 앞에 갔을 때 받을 상급은 영원히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정도로 '은밀하게(ἐν τῷ κρυπτῷ, 엔 토 크립토)' 행하라 명하십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 열심히 헌신하는데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 같이 외로운 순간이 올지라도, 성도의 신앙의 눈과 마음은 언제나 사람이 아닌 하늘에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2. 기도에 대한 가르침: 골방 기도와 주기도문 (5–15절)
이어서 5절부터 15절까지는 신앙생활의 호흡이라 불리는 기도(Prayer)에 대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는 한 사람의 영적 척도와 믿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거울입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인들은 "내가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한다", "얼마나 유창하고 거룩한 언어로 기도하는가"를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길거리 어귀에 서서 사람 보라는 듯 기도하는 외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향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명하십니다. 이에 관하여 중세의 성자인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의 유명한 일화가 참된 경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순절 기간, 프란치스코와 제자 수사들은 엄격한 금식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한 어린 제자가 극심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나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라며 울부짖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를 쯧쯧거리며 비판하고 프란치스코에게 그 제자의 버릇없음과 엄격한 규율 위반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그 어린 제자를 야단치거나 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밤에 모든 제자들을 깨운 뒤 빵과 음식을 가져오게 하였고, 자신이 먼저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 금식을 깨뜨렸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금식이라는 율법적 형식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고파 힘들어하는 형제를 향한 사랑과 자비이다."
프란치스코는 겉으로 보이는 엄격한 금식과 기도의 껍데기보다, 형제를 품는 사랑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경건임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성도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표준인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9–13절)'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기도문은 총 6개의 간구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3가지 간구]
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② 나라가 임하시오며
③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를 위한 3가지 간구]
④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⑥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이 구도는 마치 십계명의 전반부(1–4계명: 하나님 사랑)와 하반부(5–10계명: 이웃 사랑)를 나누는 것과 완벽하게 궤를 같이합니다. 여기서 기도의 핵심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기도는 내 욕망과 뜻을 관철시켜 하나님을 복종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내 삶과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나 자신을 굴복시키는 거룩한 복종입니다.
또한 14절과 15절에서 주님은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타인을 용서하라 명하시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용서할 때 비로소 내 영혼을 짓누르던 원망과 쓴 뿌리의 영적 사슬에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죄의 빚을 값없이 탕감받은 우리는, 내 힘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3. 금식에 대한 가르침: 영적 예민함의 회복 (16–18절)
세 번째로 주님은 금식(Fasting)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금식은 몸의 정욕을 억제하고 영적으로 예민해지기 위해(Spiritual sensitivity) 행하는 거룩한 영성 훈련입니다. 우리는 금식을 통해 세속의 잡음을 차단하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인생의 막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엎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금식할 때 일부러 슬픈 기색을 띠고 얼굴을 흉하게 하여 자신이 금식 중임을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게 알렸습니다. 주님은 이를 외식이라 지적하시며,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 하나님 백성의 삶: 보물과 염려를 넘어선 신뢰 (19–34절)
마태복음 6장의 마지막 단락인 19절부터 34절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이 땅에서 직면하는 가장 실제적인 문제, 즉 재물관과 염려의 문제를 다룹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0–21)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주님은 우리의 모든 시선과 관심이 땅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함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열심히 정직하게 일해 돈을 버는 정당한 경제 활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우선순위(Priority)'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재물(Mammon)이 삶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때, 영적인 삶 전체에 비참한 파탄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의 소유자가 아닌 '청지기(Steward)'로 부르셨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재물과 시간과 건강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위탁 자산에 불과합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절)는 말씀처럼,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재물과 마음의 중심을 달아보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다가올 내일에 대한 세속적 염려를 그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25, 33–34)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하물며 그분의 피로 사신 자녀들을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염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삶의 첫 번째 자리는 세상의 성공이나 안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입니다. 내 삶의 모든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갈 때,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하심과 평강이 우리의 삶에 차고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