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4장의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입니다. 전반부인 1절부터 11절까지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인 12절부터 25절까지는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두 가지의 흐름, 즉 '사역을 위한 광야의 준비'와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살펴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깊이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광야와 금식, 성령의 이끄심 (1–11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40일 금식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이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야 하니 40일 금식을 해야겠다"라고 스스로 결단하시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적어도 40일은 굶어야 남들이 알아주지 않겠는가?" 하는 인간적인 동기로 금식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분명하게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태복음 4:1)
예수님의 40일 금식과 광야의 훈련은 전적인 '성령님의 이끄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었기에 성령님께서 그 일을 이끌어 시키신 것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 물만 마시며 40일 금식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금식을 시작하고 20일째가 넘어가자,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뾰루지가 튀어나와 견딜 수 없이 가려웠습니다. 비누로 씻으면 더 가려워서,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물로만 몸을 씻어내야 했습니다. 기도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의 의지나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교만함으로 이 금식을 시작했다면, 결코 끝까지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끝까지 마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성령님께서 제게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맞는 훈련의 분량과 시즌을 허락하십니다. 어떤 분에게는 일주일, 어떤 분에게는 21일, 저에게는 40일의 금식을 시키시기도 하고, 제 아내처럼 체질상 금식이 어려워 3일을 결단했다가 하루 만에 중단하게 되는 분들에게는 또 다른 모양의 훈련을 허락하십니다. (제 아내는 금식을 길게 하지 못해도, 늘 깨어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금식의 기간이나 훈련의 모양이 우리의 영적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시기 위해 허락하시는 광야의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광야의 시험을 허락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광야의 고난과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고난 없이, 축복만 받으며 멋지게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는, 광야를 거치지 않고는 내가 철저히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없고, 다가오는 수많은 영적 공격을 이겨낼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헬라어로 '시험'을 뜻하는 페이라조(πειράζω)는 마귀가 무너뜨리기 위해 던지는 유혹(Temptation)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굳건한 그릇으로 빚으시는 연단과 훈련(Testing)의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올림픽 100m 육상 선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단 1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경주를 위해 선수들은 4년, 아니 평생을 바쳐 근육을 키우고 출발 훈련을 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선수는 결코 그 10초의 압박감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야의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조금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와도,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겨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쉽게 포기하고 넘어집니다. 마귀의 시험을 겪어보고, 돈이 없어 굶주려도 보고, 까닭 없이 비난받는 억울함을 겪어본 사람만이, 훗날 사역의 현장에서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내가 광야에서 훈련받을 때 다 지나온 일이야" 하며 의연하게 주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과 예수님의 승리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의 모든 시험을 다 당하셨습니다. (히 4:15) 오늘 본문에서 마귀는 세 가지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유혹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게그랩타이(γέγραπται, '성경에 기록되었으되')의 선포는 어둠의 권세를 단번에 파쇄하는 성령의 검이었습니다.
1. 물질에 대한 시험 (돌을 떡으로 만들라)
40일을 주리신 예수님께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떡 덩어리가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널 사랑하신다면서 왜 굶기시냐? 네 능력으로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독일에서 6년간의 유학 생활을 할 때 철저한 물질의 광야를 지났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고생을 몰랐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집안의 지원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버스 탈 돈이 없어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어느 날, 길가에서 로또(복권)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복권에 당첨되게 하셔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빠져 복권을 샀습니다. 결과는 꽝이었습니다. 그때 1리터짜리 우유를 살 수 있는 그 피 같은 돈을 날리고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물질의 연단을 주고 있는데, 왜 네 스스로 그 훈련을 피하려 하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이 없다고 해서 사명을 포기하는 나약한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떡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2. 인정받고자 하는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천사들이 받아주는 기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너의 대단함을 과시하고 인정받으라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며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고, 높아지려는 유혹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아등바등하지 마십시오. 내게 주신 작은 자리에서 겸손히 최선을 다할 때, 높이시거나 낮추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3. 권력과 타협의 시험 (내게 엎드려 절하라)
마귀는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마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속삭입니다. "한 번만 눈감고 거짓말해. 남들 다 그렇게 돈 벌고 성공해. 굳이 그렇게 유별나게 예수 믿을 필요 있어?"
이것은 철저한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 안에 부자가 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 때, 진리의 성령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내 욕망의 소리를 따라가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과 마귀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11)
이 세 가지 시험을 말씀으로 온전히 이겨냈을 때 마귀는 떠나가고 하늘의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들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할 때, 비로소 하늘의 능력이 임하고 강력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시작됩니다. 이 위대한 승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2. 공생애의 3대 사역 (12–25절)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이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12절부터 2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사역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첫째, 천국 복음의 전파 (12–17절)
예수님께서 전하신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17절)였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교만하여 의롭다 여기는 예루살렘의 중심부가 아니라, 이방인들과 피가 섞여 멸시받고 천대받던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습니다.
복음은 상한 심령,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흘러갑니다. 오늘날 너무나 값싼 복음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내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는 철저한 절망과 애통함 없이, 그저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즉 단순한 감정적 뉘우침을 넘어 삶의 생각과 방향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참된 회개를 요구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은혜 앞에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복음, 회개의 복음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둘째, 제자를 삼는 사역 (18–22절)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 던지는 어부들(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4:19)
예수님은 사역의 초기부터 의도적으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으시고, 다음 세대를 이어갈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제자 훈련의 목적은 세상에서 부자가 되게 하거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통로'로 사람을 빚어내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혼자만 은혜받고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 권면하고, 그가 또 다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도록 세우는 제자 삼는 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셋째, 치유와 회복의 사역 (23–25절)
예수님은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본문에 쓰인 테라페우오(θεραπεύω)는 단순한 육체적 병의 치료를 넘어,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는 축사(Deliverance)와 영혼의 상처를 전인적으로 치유하고 고치시는 하나님의 구원적 역사를 의미합니다.
치유 사역은 특별한 은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구하고 행해야 할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병든 자, 마음에 상처 입은 자, 영적으로 억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기도할 때, 지금도 우리를 통해 회복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3. 결론: 광야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사역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설명할 수 없는 고난과 광야의 한가운데를 걷고 계십니까?
재정의 어려움으로,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으로, 혹은 내 안의 끊임없는 세속적 욕망과 싸우며 눈물 흘리고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 거룩한 그릇으로 빚고 계시는 성령님의 훈련 시간입니다.
상황을 원망하거나 마귀의 달콤한 타협에 속지 말고, 예수님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게그랩타이)'을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의 시험을 통과할 때 하늘의 권능이 임하고, 비로소 참된 회개(메타노이아)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건지는 제자(사람을 낚는 어부)로 거룩하게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광야의 훈련을 넘어 주님의 위대한 사역자로 일어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